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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글 /건물과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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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향교를 천년의 배움터라 하는 이유 경주 향교 경주 최부자댁으로 유명한 이곳을 교동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 향교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도 교촌(校村), 교리(校里), 교동(校洞)이라 불린다면 그곳에 향교가 있다. 경주향교가 있는 이곳은 신라 신문왕 2년(682) 한반도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세워졌던 곳이고, 이는 고려시대의 향학으로, 조선시대의 향교로 이어졌다. 가히 천년의 배움터라 칭할 만한다. 경주향교 건물은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3년(1600년)에 대성전을 비롯한 제향공간을 다시 짓기 시작했으며, 명륜당 등 강학공간은 광해군 6년(1614년)에 짓기 시작해 원형을 복원했다. 현재 이곳에는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전통혼례과정을 시연하기도 하고 다도 국궁 투호 등의 전통문화 체험도 할 수 있다. by 레몬박기자
경주 월정교, 건물인줄 알았는데 다리였다 경주 향교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내 눈앞에 거대한 건물이 보인다. 왕궁이 아닌데 저리 큰 건물이 저기에 있다니? 놀라운 마음에 다가가 보니 건물이 아니라 다리였다. 월정교 월정교란 이름은 '삼국사기'에 통일신라 경덕왕 19년 “궁궐 남쪽 문천에 월정교,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을 통해 알려졌다. 월정교가 있으니 춘양교도 있을 터인데, 알아보니 춘양교는 그 터만 남아 있다 한다. 월정교는 조선시대에 유실되어 없어진 것을 10여 년간의 조사 및 고증과 복원을 진행해 2018년 4월 모든 복원을 완료했다. 2013년 교량복원을 먼저 마치고, 이후 다리 양쪽의 문루(門樓)를 마저 지었다. 문루 2층에는 교량의 복원과정을 담은 영상물과 출토 유물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다. 낮에는 월정교의 자태를 오..
경주교동법주엔 비밀의 공간이 있을까?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교동법주 전통주로 유명한 교동법주 간판을 보고 들어가 봤다. 안에 엄청난 술 제조공장이 있을 줄 알았는데 들어가보니 오밀조밀 예쁜 정원에 작은 기와집 한 채가 전부 아마 술을 주조하는 곳은 숨담는 명인만이 들어갈 수 있겠지.. by 레몬박기자
부산 대연동 유엔탑 로타리 부산 대연동에 있는 유엔평화공원 옛날에는 유엔묘지라고 했는데 .. 들어가는 입구에 유엔탑이 있다.
부산 신세계아울렛에 있는 수제 회전목마 부산 신세계 아울렛에 갔더니 회전목마가 하나 있다. 이건 왜 여기 가져다 놨을까? 부모 따라 쇼핑온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by 레몬박기자
단풍이 곱게 물든 날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정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서울 광나루에 있는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찾았습니다. by레몬박기자
부산대가 조민씨의 의전원 입학을 취소한 이유 부산대가 조민씨의 의전원 입학을 전격 취소 결정하였다. 계속되는 논란 속에서 그래도 교수들은 기본 상식이 있고 또 상아탑이라는 대학이니 이런 저런 눈치보지 않고 그저 사실에 입각해 제대로된 결정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건만, 부산대는 스스로 그 권위를 지하에 묻어버렸다. 부산대는 왜 조민씨의 의전원 입학을 전격 취소하였을까? 취소 결정을 하면서 내놓은 해명문을 보니 정말 우습기 짝이 없다. 이런 해명문을 내놓으면서 얼마나 쪽팔렸을까? 그래도 무슨 이윤지는 몰라도 하여간 입학 취소 결정을 하긴 해야겠기에 이렇게 치졸한 짓을 부끄럼도 모른채 행한 것이다. 부산대는 지난 번에도 같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일단 조민양이 제출한 동양대의 표창장은 입학사정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입학사정에 아무런 영향이 없..
신라의 숲 경주 계림과 계림비각 비석에 있는 내용은? 신라의 숲이라 전해지는 경주 계림 경주 계림에는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신화가 내려오고 있다. 계림 안에는 계림 비각이 있다. 이 비각은 1803년(순조 3)에 세운 6각형 비각으로, 안에는 계림의 내력과 경주김씨(慶州金氏)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탄생설화를 새긴 '경주김알지탄생기록비' 가 놓여 있다. 경주김알지탄생비석은 높은 대석과 비신, 개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의정 남공철(南公轍)이 비문을 짓고, 경주부윤 최헌중(崔獻重)이 글씨를 썼다. 비각 주위에는 토석 담을 두르고 따로 출입문을 달았다. 사람들은 늘 자신의 근본을 찾는 일을 한다. 자신의 조상을 찾아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이다. 경주 김씨는 이렇게 돌에 자신들의 시조에 대한 이야기를 세겨 놓았다. by 레몬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