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6월 10일,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이 일어났던 날이다.
그 때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고, 수업을 뒤로 하고 부산 서면에서 남포동까지 뛰고 또 뛰었다.
뛰고 싶어서 뛴 것이 아니라 뒤에서 최류탄을 쏘고 쫓아오니 도망간 것이다.
어디서 힘이 그렇게 났는지 그 먼 거리를 뛰었는데도 숨도 차지 않고 쉬지 않고 뛰었다.
그렇게 열심히 달아나다 보니 어느 땐가 수십만이 광복동 그 큰 거리를 꽉 채워버렸다.
범일동에서 남포동까지 그 중앙대로는 시위대로 완전히 메워졌고, 함성 소리는 드높아갔다.
한 번은 남포동에서 시위대를 뒤쫓던 경찰이 서면에서 도망온 시위대로 인해 포위당한 적이 있었다.
수백명의 전경들이 시위대 사이에서 무장을 해제당한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고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상 토론이 벌어졌다.
한참 토론이 무르익을 때쯤 도·로에 앉아 있던 시위대 머리 위로 하얀 폭죽이 터진다.
따발총 소리같은 것이 들리더니 하늘에서 하얀 가루가 쏟아지고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서 일어나 또 달려야 했다.
서면에서 시위하고 있는데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음성이 들렸다.
난 분명히 시위대 중간에서 열심히 구호를 외치고 있었는데
내 앞으로 옆으로도 아무도 없다. 나 혼자 무리와 떨어져서 열심히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시위대와 전경 그리고 그 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전경들은 최류탄 발사기를 나에게 정조준하여 쏴댔고, 내 눈 앞에는 포탄같은 것들이 쉴 새 없이 날아왔다.
놀라서 또 뛰었다. 뛰고 또 뛰었다.
남포동에서 또 열심히 구호를 외치며 가고 있는데
백골단이라는 놈들 대 여섯명이 나만 잡으러 왔다.
몽둥이를 들고 소리를 치며 따라오는데 난 보수동 골목길을 올랐다.
그 땐 늘 달리던 때라 보수동의 그 수많은 계단들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올랐다.
열심히 뛰다 보니 백골단들은 저 밑에서 헉헉대며 몽둥이를 내게 향하며 욕을 퍼붓는다.
잘 있어라 .. 빠이빠이 해주고는 열심히 산복도로를 달려서 부산역으로 내려와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우리가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그날 선거감시위원으로 활동했는데,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선거 결과를 보며 좌절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고, 도저히 집에 들어갈 여력이 없어 근처 후배 집에서 쉬었다 겨우 집으로 들어갔다.
분명히 그렇게 열심히 뛰고 또 뛰어서 승리했는데.. 노태우라니 ..
그런데 오늘이 내 아들 생일이다.
내게 그날의 함성만큼 더 중요한 기념일이 생겨버렸다.
by레몬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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