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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글 /생태갤러리

유상철 선수가 우리에게 남겨준 행복한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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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이자 또한 감독이었던 유상철 선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 

꽤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하며 잘 이겨내는 듯 했는데 

2021년 여름이 오는 언저리에 우리 곁을 떠났다. 

 

 

유상철이라는 선수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축구선수로 완전히 각인된 것은 2002년 월드컵 

2002년 월드컵 16강 첫 경기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그는 황선홍에 이어 두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벼락 같은 그의 슛이 시원하게 폴란드 골대로 빨려들어가는 그 때의 그 짜릿한 기분 

월드컵 도전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면서도 우리 국민들에게는 월드컵의 한을 풀어준 것이기도 하다.

그의 골로 우리는 월드컵 본선 첫 승리이자, 첫 경기 승리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 때가 2002년 6월 4일이다. 

 

 

 

그리고 이어진 경기에서 미국전은 무승부 그리고 포르투칼 전에서 승리하며 

그렇게 염원하던 월드컵 16강의 꿈을 이루었다. 

국민들은 경기장에서 거리에서 집에서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환호하며 얼싸 안고 감격을 서로 나누었다. 

내 평생 그렇게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며 내가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그 때가 2002년 6월 14일.. 

 

 

그리고 8강에서는 이탈리아를 4강에서는 스페인마저 꺾고 우리는 결승토너먼트로 올랐다. 

독일에게 아쉽게 패해 터키와의 3,4위 전.

여기서도 또 아쉽게 패해 우리는 한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 4위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다. 

6월 18일 이탈리아전, 6월22일 스페인전, 6월 25일 독일전 그리고 6.29 터키전을 마지막으로 

2002년 월드컵은 막을 내렸다. 

 

 

 

그때부터 한국은 세계에서 그 어느 누구도 함부로 볼 수 없는 축구강국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이후 월드컵에서는 본선 16강은 충분히 진출할 수 있는 팀으로 성장했다. 

 

 

월드컵 4강의 신화는 전세계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또 한번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우리는 더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또한 IMF 의 원조를 받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 최초로 IMF 빚을 청산한 대단한 나라가 되었다. 

세계의 괄목상대가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짜릿한 승부의 기쁨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누리게 해준 축구선수 유상철이 

췌장암으로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그 때 그 감격의 함성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을 그 때를 추억하며 떠났다 . 

 

투지의 아이콘 유상철, 그가 췌장암마저도 이겨주길 바랐지만 .. 

잘 가시오.. 당신 때문에 정말 너무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고맙고 또 고마워요 .. 이젠 주님 품에서 마음 편히 쉬세요. 

 

 

by 레몬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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