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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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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 장로 이명박 정권의 실태 그래도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 좋다 했다. 그의 전과가 아무리 화려해도 대통령이 되면 그래도 나라를 위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돈도 그렇게 많은 양반이 사리사욕으로 나라를 내팽개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시기심에 눈이 멀었으며, 한 나라를 경영할 능력도 없었다. 그것이 이 나라의 비극이었다. 이 나라의 교회의 비극이었다. 인간 노무현의 비극이었고, 이 백성의 슬픔이었다. 사진 = 2009년 5월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국민장 봉분향소에서 by 레몬박기자 레몬박기자 카메라여행 바로가기 ☞클릭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추천 하트 한 번 눌러주세요.
봉하마을 문재인 대통령의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인사말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인사말 8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렇게 변함없이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해주셔서, 무어라고 감사 말씀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대선 때 했던 약속, 오늘 이 추도식에 대통령으로 참석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노무현 대통령님도 오늘만큼은, 여기 어디에선가 우리들 가운데 숨어서, 모든 분들께 고마워하면서, “야, 기분 좋다!” 하실 것 같습니다. 애틋한 추모의 마음이 많이 가실만큼 세월이 흘러도 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의 이름을 부릅니다. 노무현이란 이름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아파했던 노무현의 죽음은 수많은 깨어있는 시민들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끝내 ..
봉하마을 고노무현대통령 분향소 헌화하는 사람들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날 내 손에 들린 한 송이 흰국화를 들고 이렇게 보내드리는 저의 모습이 참 한스러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정말 고생 많으셨구요. 대통령님 때문에 그래도 우린 국민의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울 큰 딸이 조퇴를하고 저와 함께 했습니다. 그 딸이 지금은 대학을 졸업했네요. 문재인 후보가 지금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연일 국민과 소통하는 그분의 행보가 언론의 관심이 되고 있지만 우리에게 참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이미 당신과 함께 그런 세월을 보냈기에 그런 것이겠죠. 보고 싶네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잊지 않고 있습니다. by 레몬박기자 레몬박기자 카메라여행 바로가기 ☞클릭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추천 하트 한 번 눌러주세요.
노무현 대통령의 땀이 배여 있는 봉하마을 논 노무현 대통령의 땀이 배여 있는 봉하마을 논의 풍경 봉하마을의 오리쌀 .. 논에서 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TV에서 본 후로 나도 나중에 귀농할까 그런 생각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땀이 배여 있는 봉하마을의 논..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아래 사진은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 때 찍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큰 딸과 함께 저 길을 걸어갔는데 ..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이 논에 얽히 인터넷에 나돌고 있는 재밌는 사진이 있어 함께 올린다. ㅋㅋㅋㅋㅋ 유머를 아는 사람 .. by 레몬박기자 레몬박기자 카메라여행 바로가기 ☞클릭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추천 하트 한 번 눌러주세요.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그날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그날, 봉하마을 찾는 사람들 노무현은 2009년 5월 23일 자택 뒷산인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하였다.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두부 외상과 다발성 골절 등을 사망 이유로 결론내렸다. 노무현이 사망하면서 법무부는 노무현의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시켰다. 사후 1주일 동안 봉하마을에는 전국에서 400만 명의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노무현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을 찾아 온 국민들의 발길..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대통령이었다. 사진 @ 봉하마을에서 by 레몬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