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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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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의 또 다른 자태 근정전을 뒤에서도 찍고 옆에서도 찍었다. 그런데 찍어놓고 이게 뭔지 한참을 찾아야했다. 크롭 18밀리의 최대 화각으로 최대한 가까이서 건물의 전 부분이 나오도록 화각을 잡았다. 건물을 가까이서 그것도 측면에서 잡으면 우리의 전통 건물들은 특별한 왜곡현상을 통해 새로운 맛을 보여준다. 좀 더 역동적이랄까? 근정전의 측면에서 잡은 구도와 후면에서 잡은 구도 느낌이 다르다. 때로는 렌즈의 왜곡도 사진을 돋보이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경복궁에서 본 수련의 또 다른 매력 경복궁에서 본 수련, 여기껏 내가 본 것 중 최고로 화려하고 기품이 있다.
조선 왕들의 놀이터 향원정 저는 이곳이 비원인 줄 알았습니다. 향원정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곳을 보면 왕이 참 측은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왕을 우르르보고 왕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정작 왕의 세상은 너무도 좁습니다. 이 향원정이 아무리 멋지다 해도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저라면 이 향원정과 그 밖의 세상을 바꾸지 않았을 겁니다.
경복궁을 지키는 겸사복 그들은 누구인가? 겸사복은 조선시대 정삼품아문(正三品衙門)으로 왕의 신변보호를 위한 시립(侍立)·배종(陪從)·의장(儀仗) 및 왕궁 호위를 위한 입직(立直)·수문(守門)과 부방(赴防)·포도(捕盜)·포호(捕虎)·어마(御馬) 점검과 사육·조습(調習)·무비(武備) 및 친병(親兵) 양성 등의 의무를 맡은 기병(騎兵) 중심의 정예 친위병 이었다. 1409년(태종 9) 처음으로 성립되었고, 1464년(세조 10)에 정비된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1754년(영조 30)에 용호영(龍虎營)으로 통합되었다가, 고종 때는 겸사복청(兼司僕廳)이라 하였다 겸사복은 조선군대 중 가장 정예 기병으로 주요 임무가 왕의 신변보호와 호위, 친병(親兵)양성이었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무재(武材)가 있는지 없는지가 제일 중요시 되었고, 신분보다 무재와 국왕..
경복궁을 바라보다 때로는 사진을 찍어놓고 왜 이리 찍었을까 싶을 때도 있다 경복궁을 담는데 꽉 차게 담을까 아님 좀 더 여유를 두는게 좋을까 고민하다 아래와 같이 담았다.
잡상과 궁궐 그리고 고궁 역동적으로 사진찍기 잡상은 궁궐 지붕에 있는 작은 수호신상들을 말하는 것이다. 옛 건물들을 볼 때 건물 위에 이런 잡상이 올려져 있으면 그 건물은 왕족과 관계있는 건물이다. 일반 평민들은 이런 치장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손오공과 삼장법사 등 7수호신의 신상을 만들고 건물의 성격에 따라 올리는 그 수도 다르다고 한다.궁궐이라 해도 다 잡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중국 자금성에는 11개의 잡상이 올려져 있다고 한다. 이 잡상을 다른 말로 어처구니라고 한다. 우리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을 하는데, 궁궐을 지을 때 제일 마지막에 올려놓는 것이 바로 이 잡상, 어처구니이다. 그런데 이 어처구니가 없다면 집을 다 지어놓고 마무리를 못하게 되는 그런 황당한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위 사진에 보이는 것이 바로 잡상이며, 제일 앞..
왕이 노니던 연못, 경복궁 향원정 참 아름다운 연못입니다. 그런데 왕이 왜 이런 궁궐 안에 연못을 만들어 연회를 즐겼을까요? 바깥의 풍경이 아무리 좋아도 위험하기 때문이죠. 여기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넓은 세상의 자연 풍경만 하겠습니까? 이런 인공적인 연못을 왕이 소유하고 있다해도 어찌보면 하나님이 지은 자연을 자연스럽게 누리고 살아가는 필부보다 못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