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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글 /건물과 유적지

경주향교를 천년의 배움터라 하는 이유

경주 향교 

경주 최부자댁으로 유명한 이곳을 교동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 향교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도 교촌(校村), 교리(校里), 교동(校洞)이라 불린다면 그곳에 향교가 있다.

 

 

 

 

경주향교가 있는 이곳은 신라 신문왕 2년(682) 한반도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세워졌던 곳이고,

이는 고려시대의 향학으로, 조선시대의 향교로 이어졌다.
가히 천년의 배움터라 칭할 만한다. 

 

 

 

경주향교 건물은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3년(1600년)에 대성전을 비롯한 제향공간을 다시 짓기 시작했으며,

명륜당 등 강학공간은 광해군 6년(1614년)에 짓기 시작해 원형을 복원했다.

 

 

 

현재 이곳에는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전통혼례과정을 시연하기도 하고 

다도 국궁 투호 등의 전통문화 체험도 할 수 있다. 

 

 

by 레몬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