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과 글 /풍경갤러리

가수 현미 별세, 그의 대표곡과 기억해야 할 프로필

2023년 4월 4일, 향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7분경 서울 용산구 이촌동 본인의 자택에서

현미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 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시신은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나무위키에서 퍼옴

 

 

1.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 무대 칼춤 무용수였던 현미는 방송을 펑크낸 여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1957년 미8군 SHOW 무대에서도 활동하였다. 당시는 드물게 있었던 여대생 가수라는 메리트를 살려 현 시스터즈라는 그룹으로 활동했고 그 중에서도 센터를 담당했다.

 

 

밤바다 야경@부산 오륙도



2. 1962년 이봉조와 1집을 작업하며 미국의 대가수 냇 킹 콜의 곡에 현미 본인이 직접 작사한 가사를 입혀 '밤안개'를 발표,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다. 사실 본래 '밤안개'가 타이틀곡이 아니었으나 '밤안개'가 타이틀 곡이었던 '당신의 행복을 빌겠어요'보다 인기가 많아지자 뒤늦게 교체하여 재발매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또한 작곡가 길옥윤의 데뷔곡으로 유명한 '내 사랑아'가 수록 되었다. 이후 60년대 대표적인 여가수로 자리매김하며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한명숙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만덕성당 예수상 @레몬박기자

 


3. 1968년 같은 해 '보고 싶은 얼굴'이란 곡을 발표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표현한 자신의 대표곡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당시 주로 이봉조가 만든 노래만 불렀던 현미는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한국 가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 중에서도 이봉조가 해외 국제가요제 출전에 집중하던 때에 그리스 국제 가요제에 현미와 함께 출전해 '별'로 주요부문에 수상하며 국내외 중저음의 허스키한, 강한 성량의 보컬 능력도 인정 받았다.

 

 

 

부산국제불꽃축제 @레몬박기자



4. 이러한 대중적 인기와 인지도에 힘 입어 미국 레이건 대통령 취임 파티에 초청받아 한국 대표 가수로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인지도가 전무했던 동양인 중년 가수가 미국의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부르자 연달아 기립박수와 앵콜이 이어져 계획했던 것보다 더 다양한 곡들을 선보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공연은 주로 가스펠 위주로 불렀다고 한다.

 

 

달무리 @레몬박기자

 



5. 2007년 데뷔 50주년 앨범을 발매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고 한국 최초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50주년 기념 앨범과 공연을 발표하자 실제로 패티김이 전화를 걸어 "형님은 노래하는 게 질리지 않냐?"며 "대단하다"고 축하했다고 한다. 현미 자신은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노래를 부를 생각이라 밝혔으며, 2023년 사망하기 전까지도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주로 외부 행사 및 예능 위주로 활동했다.

 

 

 

 

현미씨와 친한 지인들 그리고 가족들의 말을 들어보면 돌아가시 전날까지도 정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날 갑자스런 비보에 모두들 믿을 수 없다고 하며 깊은 슬픔에 빠졌다. 

우리나라 가요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가 또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