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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글 /생태갤러리

도종환의 시 '접시꽃 당신'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 때문에 

접시꽃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접시꽃을 볼 때마다 

시의 내용은 알지 못해도 시의 제목 '접시꽃 당신'은 생각이 난다. 

 

 

 

 

 

<접시꽃 당신>


-시, 도종환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내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불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씨앗들고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꾸러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어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내립니다
이제 또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접시꽃

 

 

 

by 레몬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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