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과 글 /건물과 유적지

(166)
한국고전건축의 짬뽕 국립민속박물관의 자태 경복궁 너머 보이는 좀은 낯설어 보이는 건물, 우리식 건물이라고 보기에는 그렇다고 말하기 힘든 그런 건물이 보입니다. 바로 국립민속박물관입니다. 언뜻 보면 전통 일본식 건물이 아닌가 싶어 어떻게 민속박물관 건물을 저따위로 만들었을까? 그런 생각에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그런 경험을 많은 분들이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일본식과도 차별이 되는 그런 건물 형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건 무엇인가? 한 마디로 우리 민속박물관은 우리 고전 건물의 종합선물세트, 일명 짬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은 1972년에 건립,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어오다가 1986년 국 립중앙박물관이 이전함에 따라 개축되어 1993년 2월 17일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의 또 다른 자태 근정전을 뒤에서도 찍고 옆에서도 찍었다. 그런데 찍어놓고 이게 뭔지 한참을 찾아야했다. 크롭 18밀리의 최대 화각으로 최대한 가까이서 건물의 전 부분이 나오도록 화각을 잡았다. 건물을 가까이서 그것도 측면에서 잡으면 우리의 전통 건물들은 특별한 왜곡현상을 통해 새로운 맛을 보여준다. 좀 더 역동적이랄까? 근정전의 측면에서 잡은 구도와 후면에서 잡은 구도 느낌이 다르다. 때로는 렌즈의 왜곡도 사진을 돋보이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뿌리깊은 나무 세종이 노닐던 경회루의 풍경 경복궁 안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목조누각. 국보 제224호. 외국 사신의 접대와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1867년(고종 4) 다시 지은 것이다. 처음에는 경복궁의 서북쪽에 연못을 파고 작은 규모로 지었던 것을 1412년(태종 12)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에게 명해 서쪽으로 옮겨 큰 연못을 파고 4각형의 인공섬 위에 더 크게 세웠다. 이때 경회루로 이름지었고, 파낸 흙으로는 침전 뒤편에 아미산을 만들었다. 1429년(세종 11) 중수되었고, 1475년(성종 6) 다시 고칠 때 48개의 석주(石柱)에 구름 속에서 노니는 용을 조각해 조선 3대 장관의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1505년(연산군 11)에는 연못 서쪽에 만세산을 만들었다. 1592년(선조 25) 한양의 백성들에 의해 전부 불타버렸..
조선 왕들의 놀이터 향원정 저는 이곳이 비원인 줄 알았습니다. 향원정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곳을 보면 왕이 참 측은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왕을 우르르보고 왕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정작 왕의 세상은 너무도 좁습니다. 이 향원정이 아무리 멋지다 해도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저라면 이 향원정과 그 밖의 세상을 바꾸지 않았을 겁니다.
경복궁을 지키는 겸사복 그들은 누구인가? 겸사복은 조선시대 정삼품아문(正三品衙門)으로 왕의 신변보호를 위한 시립(侍立)·배종(陪從)·의장(儀仗) 및 왕궁 호위를 위한 입직(立直)·수문(守門)과 부방(赴防)·포도(捕盜)·포호(捕虎)·어마(御馬) 점검과 사육·조습(調習)·무비(武備) 및 친병(親兵) 양성 등의 의무를 맡은 기병(騎兵) 중심의 정예 친위병 이었다. 1409년(태종 9) 처음으로 성립되었고, 1464년(세조 10)에 정비된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1754년(영조 30)에 용호영(龍虎營)으로 통합되었다가, 고종 때는 겸사복청(兼司僕廳)이라 하였다 겸사복은 조선군대 중 가장 정예 기병으로 주요 임무가 왕의 신변보호와 호위, 친병(親兵)양성이었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무재(武材)가 있는지 없는지가 제일 중요시 되었고, 신분보다 무재와 국왕..
경복궁을 바라보다 때로는 사진을 찍어놓고 왜 이리 찍었을까 싶을 때도 있다 경복궁을 담는데 꽉 차게 담을까 아님 좀 더 여유를 두는게 좋을까 고민하다 아래와 같이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