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 소리
- 문익환
김윤식, 김현의 '한국문학사'를 읽다가 깜빡 잠이 들었었나 봅니다.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눈을 뜯으며 창가에 나왔더니, 그건 천지를 뒤덮는 밤비 소리였습니다.
감시탑 조명등 불빛에 빗줄기들의 가는 허리가 선명합니다.
무지개가 서고 비들기를 날리려면 오늘 밤새, 내일도 모레도 며칠 더 쏟아져야 할 것 같군요?
밤비 소리가 왜 나를 불러냈을까?
나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입니다. 빗소리가 점점 세어져 갑니다. 선창 밑 어디 잠짝들 틈에 끼여 코를 골고 있을 요나를 깨우기라도 하려는 듯 빗소리가 이젠 마구 기승을 부리는군요.
나는 눈을 가늘게 떠 봅니다. 흥건히 젖은 속눈썹들 사이로 비쳐 드는 불빛이 비에 젖어 밤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입니다.
밤이 울고 있습니다.
내가 대여섯살 되던 때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 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 아버님이 방에서 혼자 소리없이 울고 계시는 걸 뵌 일이 있습니다. 나도 괜히 가슴이 울먹여 뒤뜨락으로 돌아가 뽕나무에 기대어 서서 눈물 짓던 일이 생각납니다.
사진 = 비오는 날 소토교회
시 = 문익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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