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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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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비오는 날에 새겨진 짙은 사랑의 갈증 응답하라 1988 내가 대학교 4학년 때이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올림픽 때문에 한창 국민들의 시선이 뺏겨 있을 때 난 참 허무한 대학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졸업하면 무얼하지? 국문학과..다닐 때는 좋았지만 졸업할 때 갈 수 있는 곳은 세 군데 교직을 이수하면 교사로 그것이 없으면 학원가로 그리고 글 쓸 능력이 되면 언론사로.. 그리고 더 공부하고 싶으면 대학원으로.. 난 대학원을 진학하기 위해 진학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정말 내가 가야할 길인지 참 많이 망설였다. 문학에 대한 갈망보다 인생과 진리에 대한 갈망이 더 컸기 때문이며 이보다 앞으로 먹고 살아야 할 생계 걱정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언론사 준비를 한창 하고 있을 때.. 비가 오는 날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부산대학교 병설 유치원의 장미 덩굴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에서 운영하는 병설 유치원 여기 교사로 들어가는 것도 아기가 입학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다고 한다. 그냥 소문일 뿐인 것인지... 봄 햇살에 춤추는 빨간 장미 by 레몬박기자
부산대학교 박물관 언제 가봤던가? 박물관은 그저 나에겐 박물관이다. 부산대학교 박물관 여긴 부산시립박물관에도 없는 보물이 있다고 하지만 이 학교에 입학하여 10년을 넘게 다니면서 꼭 한 번 들어가봤다. 내 기억에는 입학하고 처음 학교 소개할 때 살며서 들어가본 것 같다. 그마저도 너무 오래되어 지금은 아예 생각도 나질 않는다. 내게 박물관이 과거를 기억하는 곳이 아니라 박제되어버린 죽은 공간이다. by 레몬박기자
겨울이 오는 캠퍼스 풍경 겨울이 오는 부산대학교 캠퍼스 촬영 = 부산대학교 by 레몬박기자
초겨울 부산대 도서관 앞 거묵 부산대 도서관 앞 거목 나무이름을 모르겠다. 촬영 = 부산대학교 제2도서관 앞 by 레몬박기자
부산대학교 앞 거리 부산대학교 앞에는 부산대학교생들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 먹거리와 입을 거리 등 쇼핑과 만남 그리고 유흥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부산대가 최근 캠퍼스를 옮길려고 했을 때 금정구 주민들의 대대적인 반대움직임이 있었다. 그 덕에 현재 공과대학의 경우 캠퍼스를 옮겨서 제대로 된 시설을 지어야 공대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데 그만 지역 여론에 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대를 중심으로 엄청난 상권이 형성되어 있어서 자칫 지역경제가 몰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산대학교는 예전 참 소박한 정문이 있었고, 이 문을 따라 올라가면 시계탑과 대운동장이 나타난다. 그리고 부산대학교 정문 아래에는 크고 작은 서점이 10여개가 줄지어 있었고, 지금 지하철 역 주변에는 중고서점도 두어개가 있었다. 이 ..
부산대학교 미리내계곡 80년대 부산대학교는 두 가지의 큰 자랑거리가 있었다. 하나는 학교 안에 미리내계곡이라는 경치가 절경인 계곡이 있었고. 또 하나는 학교 정문에 무려 10여개 이상의 서점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장사가 잘됐다는 것이다. 예전 태풍 매미 때문에 미리내 계곡도 큰 상처를 받아 내가 학교 다니던 때의 그 아름다움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지금도 맑은 물과 정겨운 새소리 자연의 향취를 맡으며 캠퍼스를 거닐 수 있다. 여기서 옛날에는 텐트도 치고 삼겹살도 구워먹고 했는데.. by 레몬박기자
부산대학교 문창회관 80년대의 추억 부산대학교 문창회관 80년대 이곳은 총학생회와 학교 생필품 조합과 문창식당이 있었다. 문창식당에서 파는 소고기국 ..정말 그 국물맛이 끝내줬다. 난 당시 도시락을 들고 다녔는데, 도시락에는 밥만 있었고, 문창식당에서 국만 사서 밥말아 먹었다. 깎두기와 김치는 반찬으로 나오니 정말 저렴하게 한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 때 내 도시락을 같이 먹은 이가 '내고향6시'에서 한창 끼를 발휘했던 '김준호' 형이다. 문창회관 밑에 있는 건물이 현재 본관건물이고 그 아래는 현재 도서관 건물이다. 본관건물이 있던 자리, 내가 다닌 그 때는 그냥 운동장이었다. 넉넉한 터 또는 효원광장이라고 이름불린 곳이 운동장에 있었다. 당시 교문을 통과하면 시계탑이 있고, 그 뒤에 대운동장이 있었는데, 이 대운동장은 축구장 두 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