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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카메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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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의 또 다른 자태 근정전을 뒤에서도 찍고 옆에서도 찍었다. 그런데 찍어놓고 이게 뭔지 한참을 찾아야했다. 크롭 18밀리의 최대 화각으로 최대한 가까이서 건물의 전 부분이 나오도록 화각을 잡았다. 건물을 가까이서 그것도 측면에서 잡으면 우리의 전통 건물들은 특별한 왜곡현상을 통해 새로운 맛을 보여준다. 좀 더 역동적이랄까? 근정전의 측면에서 잡은 구도와 후면에서 잡은 구도 느낌이 다르다. 때로는 렌즈의 왜곡도 사진을 돋보이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경복궁에서 본 수련의 또 다른 매력 경복궁에서 본 수련, 여기껏 내가 본 것 중 최고로 화려하고 기품이 있다.
뿌리깊은 나무 세종이 노닐던 경회루의 풍경 경복궁 안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목조누각. 국보 제224호. 외국 사신의 접대와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1867년(고종 4) 다시 지은 것이다. 처음에는 경복궁의 서북쪽에 연못을 파고 작은 규모로 지었던 것을 1412년(태종 12)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에게 명해 서쪽으로 옮겨 큰 연못을 파고 4각형의 인공섬 위에 더 크게 세웠다. 이때 경회루로 이름지었고, 파낸 흙으로는 침전 뒤편에 아미산을 만들었다. 1429년(세종 11) 중수되었고, 1475년(성종 6) 다시 고칠 때 48개의 석주(石柱)에 구름 속에서 노니는 용을 조각해 조선 3대 장관의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1505년(연산군 11)에는 연못 서쪽에 만세산을 만들었다. 1592년(선조 25) 한양의 백성들에 의해 전부 불타버렸..
인생이 행복한 것은 아름다운 동행이 있기 때문이다 홀로 길을 걸어본 일이 있는가? 지금처럼 스산한 바람이 불 때 말이다. 그 땐 정말 인생이 행복하게 느껴지질 않는다. 같은 길이라도 이렇게 함께 걸으면 길을 가는 거리가 달라지는 것 같다. 우린 행복한 인생을 위해 행복한 동행이 필요하다. 행복한 동행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인생의 이야기, 우리 피오나님이 책으로 내셨네요. 이 책 대박나면 한 턱 거나하게 쏘신다 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일상에서 대하는 바로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살짝 미소도 머금게 하고, 안습으로 눈물 훔치게도 하고, 깔깔 배를 잡고 돌돌 구르기도 하고, 썩소를 머금게 하는 글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시간이 간 줄 모르게 벌써 다 읽었나 싶은 그런 책입니..
조선 왕들의 놀이터 향원정 저는 이곳이 비원인 줄 알았습니다. 향원정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곳을 보면 왕이 참 측은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왕을 우르르보고 왕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정작 왕의 세상은 너무도 좁습니다. 이 향원정이 아무리 멋지다 해도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저라면 이 향원정과 그 밖의 세상을 바꾸지 않았을 겁니다.
경복궁을 지키는 겸사복 그들은 누구인가? 겸사복은 조선시대 정삼품아문(正三品衙門)으로 왕의 신변보호를 위한 시립(侍立)·배종(陪從)·의장(儀仗) 및 왕궁 호위를 위한 입직(立直)·수문(守門)과 부방(赴防)·포도(捕盜)·포호(捕虎)·어마(御馬) 점검과 사육·조습(調習)·무비(武備) 및 친병(親兵) 양성 등의 의무를 맡은 기병(騎兵) 중심의 정예 친위병 이었다. 1409년(태종 9) 처음으로 성립되었고, 1464년(세조 10)에 정비된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1754년(영조 30)에 용호영(龍虎營)으로 통합되었다가, 고종 때는 겸사복청(兼司僕廳)이라 하였다 겸사복은 조선군대 중 가장 정예 기병으로 주요 임무가 왕의 신변보호와 호위, 친병(親兵)양성이었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무재(武材)가 있는지 없는지가 제일 중요시 되었고, 신분보다 무재와 국왕..
경복궁을 바라보다 때로는 사진을 찍어놓고 왜 이리 찍었을까 싶을 때도 있다 경복궁을 담는데 꽉 차게 담을까 아님 좀 더 여유를 두는게 좋을까 고민하다 아래와 같이 담았다.
농부의 마음 추수한 보람이 있어야 할텐데.. 걱정이 더 앞서는 우리 농부들의 마음입니다.